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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꼭 이래야 되나?
  • 박철민 칼럼니스트. 작가
  • 승인 2019.01.0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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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버스 옆면 광고판을 보았습니다. <언니>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사진이 섬뜩하여 불편했습니다.

▲영화 <언니>포스터

온몸이 피범벅인 여인이 작은 손도끼도 아니고 해머(일명:오함마)를 질질 끌고 가는 시진이었습니다. 초점 없이 스스로도 주체 못하는 해머를 끌고 가는 여인의 등 뒤로, "언니가 지켜줄게"라는 선전문구(Copy)가 흐르더군요.

무얼 지켜주려고 저 무거운 해머까지 질질 끌고 가나 싶어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상업성의 예술이고 생각에 한계는 없지만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영화는 연출가의 역량이 빗어내는 상상력의 예술입니다. 무한한 상상력에 감독의 철학이 녹아 관객에게 삶의 비전(Visoon)을 제공하는 고마움이 있습니다.

킬링타임용이니, 난도질이니, 느와르니 등의 특정 장르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는 난도질 피범벅 영화를 상상력의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상상력은 연출가의 머리를 빌려 관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마술이지, 저급한 난도질이 아닙니다.

영화니까, 드라마니까 하는 이유로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는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국민, 특히 청소년의 정서가 심하게 상처 입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참 건조합니다. 숨 막히고 거칠고 음습하고 삭막합니다.(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노천카페에 앉아 풍요로운 대화를 나누는 섬세함 대신 고갈된 정서와 갈등만이 난무합니다. 정점에는 물론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요.

배워 알지 못하면 생각하는 기능에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생각만 하고 배우려 하지 않으면 삶의 지혜는 산으로 가지요. 상상력은 지혜로운 사고와 풍부한 경험의 산물입니다.

어떤 일도 대결과 반목으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은 정도가 지나칩니다. 급기야는 선행과 같이 사는 삶의 대명사인 기부문화에도, 욕망의 손을 드리우는 못난 짓을 하기도 하지요.

상상력은 꿈의 구현이자 자유로운 사고의 발현입니다. 물론 총기 규제의 나라라고 해서 총격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법이 없듯이, 연약한 여성이 해머를 휘두르는 영화를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영화에 팀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 제임스 카메론이 자리할 수도 없지요. <신과 함께>의 상상력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라는 미명으로 마구잡이로 만들어지는 영상물이, 우리 삶에 은연중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슬쩍 건네보는 쓸데없는 우려일 뿐입니다.

돼지는 미련하지 않고 똑똑한 동물이지요. 돼지를 많이 먹는 민족이라 평소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인간과도 친숙한 동물입니다. 돌아보면 반려돈도 흔히 볼 수 있지요. 특히 황금의 옷을 입은 올해의 돼지들은 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영화 카피가 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상상력도 아직 쓰지 않은 머리에 담아 나와 가족의 삶에,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 풍요하게 쓰이길 기대합니다.

 

박철민 칼럼니스트. 작가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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