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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들이 문들을 여닫는 일들이다.
  •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 승인 2019.01.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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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구례읍에 나갔다가, 찻집 “달빛향아”에서 문월(門越) 강래하 선생과 차를 마시며, 선생의 호를 화제로 문과 경계, 경계와 문을 이야기하다 보니, 너나없이 우리네 사람 사는 일들이, 기본적으로 날마다 3개의 문을 여닫으며 사는 것으로, 1마음의 문이 있고, 2방문이 있고 3집의 현관문이 그것이다.

또 다른 3개의 문이 있는데,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든, 또는 상대에게 어떤 협조를 구하거나, 사업상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이든, 당사자가 있는 건물의 1현관문을 열고, 2사무실 문을 열고 3사람 마음의 문을 여는 그것이다.

스스로 여닫으며 드나드는 자신의 문 3개, 그리고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 열어야 하는 타인의 문 3개를 통하여,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마음의 문을 열어 화합하여 하나가 되기도 하고, 서로 불화하여 대립하기도 하는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이 문을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사람과 나라가 흥망과 성쇠를 거듭하여 오고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문의 근본은 서로 다른 것을 알리고 분별하는 경계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로 융합하고, 성스러운 것과 잡스러운 것이 하나로 화합하여 상생하게 하는 것이라, 화합과 불화의 경계, 사랑과 증오의 경계, 만남과 이별의 경계, 세상 모든 소통과 불통의 경계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있고,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 날마다 여닫으며 드나들고 있는, 이 유무형의 문이라는 말이다.

서로 다른 것들을 가르고 있는, 경계의 벽으로 서있는 문을 열면, 분별의 경계가 없는 하나의 공간이 되고, 문을 닫으면 하나의 공간이 둘로 나뉘어 분별과 경계의 벽이 돼버리는 것이 문이니, 이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고,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실상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누구나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문을 통해야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문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니, 우리네 사람이 사는 일들이, 이 문을 여닫는 일들이고, 세상에는 말과 글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유무형의 문들이 있으며, 문이라 해서 다 같은 문이 아니고, 문도 문 나름이고 차별이 있으므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무형의 문들이, 곧 서로의 대상을 분별하고 차별하여 가르는 경계이고 이 경계가 곧 문이니. 사람이 사는 일들이 문들을 여닫는 일들이라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문들을 여닫으면서, 분별하는 경계를 짓거나, 또는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는 경계를 허물려고 몸부림들을 치고 있을 것인데, 어떤 문이 어떻다며 원하는 문들을 향하여, 온갖 몸짓과 소리들로 아우성을 치며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정작 지금 자신에게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 번 열고 나오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자궁의 문이 있고, 들어가면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저승의 문이 있고, 세상에는 이런저런 유무형의 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부처님도, 공자님도, 예수님도, 절색의 미인도, 교도소의 최순실도,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교도소 밖 손혜원도,) 그 어떤 사람도 피해 가지 못하고, 반드시 드나들어야 하는 절박하고 중요한 문은, 그것이 무엇이든 날마다 자신들이 먹은 것들은, 항문을 통해서 배설하는 공간인 해우소의 문 즉 뒷간 화장실의 문이다.

그깟 화장실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포함 소화기를 가진 포유동물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몇 날 며칠을 살 수 있지만, 배설할 것을 제때에 배설하지 못하면,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아주 나약한 존재임을 모르는 것으로, 단언컨대 자기 자신의 실체도 모르면서 부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속물이다.

항문은 애초에 몸 밖에서 들어와, 몸 안에서 변이 된 것들을, 다시 몸 밖으로 내보내 안과 밖으로 소통하는 문이고, 화장실은 배설된 것들을 정화하여, 세상과 다시 소통하게 하는 공간의 문이니,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은 화장실의 문이고, 분별과 차별의 경계가 없는 공간이 화장실이다.

세상의 모든 관계와 공간을 분별하고 차별하는 문과 경계가,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드나드는 이 화장실 정도만 된다면, 온 세상이 다 같이 즐겁고 행복한 낙원으로, 바랄 것이 없는 좋은 세상이 될 것인데, 정작 너나 나나 누구 할 것 없이 황금 침대에 비단 금침이 깔린 문만을 찾고 있는 까닭으로, 저마다 사는 일들이 어렵고, 불통과 불신의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사전을 검색하여 보면, 경계문(境界門)이라 하여 성지에서 잡스러운 것이 들어오지 못하는 성스러운 공간임을 알려 주는 문이라고 하였는데.......

모든 사람들은 오직 이 화장실의 문을 통해서만, 스스로 즐거움을 얻고 구원이 되는 것이니, 화장실의 문이야말로 성(聖)과 속(俗)의 경계가 없는 문이며,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할 뿐, 성스러운 것도 없고 잡스러운 것도 없는 화장실은 명당 가운데 명당이며 성지(聖地)이다.

▲구례읍에 소재한 찻집 “달빛 향아”의 화장실 이름인 “편한 세상”이다.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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