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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고나서...
  • 김낙훈 편집국장
  • 승인 2019.02.0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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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의 영화 리뷰]=영화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은 이집트 출신의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화한 작품이다. 1986년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가 연출 제작하였고, 007 제임스 본드로 알려진 '숀 코네리'가 이성적인 수도승 ‘윌리엄’역을 맡았고,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윌리암의 제자 '아드조'로 열연하였다.

영화는 아드조가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1327년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도착한 수도승 윌리엄과 그의 제자 아드조는 수도승 아델모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수도승들이 악마의 짓이라며 공포에 떠는 반면 윌리엄은 증거를 찾아가며 죽음에 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윌리엄에 의해 수도승의 죽음이 자살로 밝혀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죽음이 발생한다.

그리이스어 번역사 베난티오가 동물의 피를 받아 놓는 거대한 항아리에 죽은 채로 빠져있는 모습이 발견된 것이다.

수도승들은 요한 계시록의 예언이 시작되었다며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윌리엄은 지난 사건과의 상관관계를 돌아보며 이내 두 사건의 연관성을 찾아낸다. 첫 번째 죽음을 맞은 수도승과 두 번째 죽음을 맞은 번역사가 함께 서고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윌리엄은 서고를 찾아간다.

그러나 사서는 무엇을 숨기는 듯 서고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몰래 서고에 들어간 윌리엄과 아드조는 보조사서의 책상에서 암호가 적혀 있는 한 장의 쪽지를 발견한다. 이들 몰래 사고에 숨어 있던 보조사서는 책을 한 권 훔쳐 달아난다.

그리고 얼마 후 보조사서 베렁가리오도 죽은 채 발견된다. 보조사서의 손끝과 혀끝에 검은 잉크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한 윌리엄은 그가 비밀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보조사서가 훔쳐간 책은 영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이유로 인해 금기 서적으로 분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었고, 그 금기 서적에는 페이지마다 독이 발라져 있었다. 앞서 죽은 이들 모두 몰래 그 금기 서적을 읽다가 독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다.

금기 서적 -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찾기 위해 서고로 들어간 윌리엄과 아드조는 서고 안 쪽의 밀실에서 눈 먼 수도승 호르헤를 마주치게 된다. 금기 서적 '희곡론'을 윌리엄에게 내민 호르헤는 윌리엄이 독의 함정에 넘어가지 않자 윌리엄을 밀치고 서고에 불을 지른다. 윌리엄은 책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아드조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고 밖으로 나온다.

한편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아 사건을 신속히 해결을 하려는 베르나르도 드귀의 교황사절단은 수도원에 도착한다. 이들은 수도승들에게 육체의 대가를 지불하며 굶주림을 해결하던 마을 처녀와 돌치노파 수도승인 살바토레 등을 죽음의 원악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려고 한다. 화형을 집행당하던 와중 서고에서 불길이 치솟자 그동안 참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들고일어남으로써 죄를 뒤집어 쓸뻔한 마을 처녀는 간신히 죽음을 면하게 된다.

불길에 휩싸인 서고에서 호르헤는 자신이 독을 묻힌 금기 서적의 책장을 뜯어 먹으며 결국 죽음을 맞게 되고, 윌리엄은 가까스로 남은 서적들을 챙겨 서고 밖으로 나온다.

스승 윌리엄과 수도원을 떠나는 아드조의 앞에 화형대에서 도망친 마을 처녀가 나타나고, 매달리는 그녀를 두고 아드조는 떠나고 만다.

하지만 마을 처녀를 추억하며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오래도록 후회 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나레이션을 내뱉는 늙은 수도승 아드조의 대사에서 그녀가 속세의 유일한 사랑이었다는 것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중세의 수도원을 통해 일어났던 연쇄 살인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132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이 영화가 북부 이탈리아 수도원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중세 시대 유럽을 지배하던 교황과 신중심주의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는 1327년 즉 중세 말을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르네상스가 먼저 일어났던 이탈리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하면 인본주의, 즉 신(神) 중심적인 절제와 금욕의 암흑시대였던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 이성과 인간성의 해방으로 돌아가자는 문화 부흥운동을 말한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문화라 하면 그리이스, 로마 문화를 일컫는다. 즉 이 영화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그리이스 시대의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 사건을 통해 이 영화는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던 수도원의 수도승 그리고 로마의 교황청과 지금의 수도원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책을 통해 알게 된 수도승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죽어간 것이고 금서의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호르헤의 음모의 독에 휘말리어 죽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의 살인범 호르헤는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즉 진리의 하위에 인간을 두었기에 타인을 수단으로 삼고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폐기한 교조주의적 태도,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는 언제든 인간의 이성을 교살하는 악마로 돌변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중세 수도원의 모순된 모습을 통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 수도원은 금욕적인 생활, 그리고 절제를 늘 중요시 여기며 항상 수도승들이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하여 화형을 처하거나 고문을 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그 점을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다. 자신의 금욕을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채찍질한다든지 또한 참지 못한 수도승 살바토레 같은 경우는 여자와 직접 관계를 맺기도 하나 결국 고문을 당하게 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금욕을 강조했던 수도원의 남성들이 여성화되어 가는 장면을 통해 이들의 삶이 비참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민중들의 억압적인 삶의 모습이다. 교황청으로부터 그리고 교황의 지배, 교황의 힘이 막강했던 중세시대 민중의 수탈자는 바로 다름 아닌 종교였다는 점이다.

정신적 지도자이고 민중에게 희망을 주며 교훈을 주어야 할 종교가 교황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서 민중에게 면죄부를 판매한 장면, 곡식이며 가축을 수도원에 바치게끔 하는 장면은 중세 사회의 타락한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먹을 것이 없어서 몸을 팔았던 여자의 모습과 수도원에서 나오는 쓰레기 더미에서 하나라도 음식을 더 찾기 위해 날뛰는 빈민들의 모습들을 보며 중세의 썩어 가는 부패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다른 점은 종교 갈등 문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후란시스코파와 베네딕트파 그리고 돌치노파는 각각 주장하고 있는바가 다르다. 특히 돌치노파를 주목해서 보면 이들은 나머지 종파와 다르게 민중들의 편에 섰고 그랬기 때문에 노선을 달리한 교황청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으며 결국 수도원에서도 명확한 증거 없이 단순히 돌치노파라는 이유만으로 화형에 처해지는 모습들에서 중세의 종교 간의 갈등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여하튼 종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미쳐버리게 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준 영화 '장미의 이름'은 광기, 그리고 지성과 이성 - 과연 이 중 무엇이 옳은 것일까? 혹은 두 가지 경우 다 틀린 것은 아닐까? 종교가 유지해야 될 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를 고민해보게끔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우리는 맹목적인 종교와 광신적인 종교인을 싫어한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더 이상의 요구가 불필요한, 유일하게 완전한 것으로서 간주하고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불신자는 지옥으로” 등의 다소 거북한 구호를 외치며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곤 하는 종교인들을 보며 불쾌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비단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종교의 완고한 홀로주체성이 낳는 폐해는 역사적으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놓고 수백 년에 걸쳐 계속된 십자군 원정이 그렇고 심지어는 기독교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도 저마다의 구분되는 교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러 종파들의 이권다툼이 그렇다.

그리고 원작자인 움베르트 에코는 호르헤라는 등장인물로써 그러한 종교 이데올로기적 나르시즘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영화 속에서 호르헤는 “웃음은 죄악이다”라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필자는 우리시대의 모든 종교지도자와 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작금의 열린사회에서 종교는 어떤 모습과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김낙훈 편집국장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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