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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정치 가능하다?....이상일 뿐이다.
  • 심춘보 대표/발행인
  • 승인 2019.02.2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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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판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집단이 있다. 그들이 진보나 보수가 아닌 중도를 표방한 절대적 이유는 양극단(민주당,자유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허물기 위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웠다. 그리고 거기에 합리적, 온건적이라는 레토릭으로 포장했다.

중도를 표방한 이유는 대결의 정치를 배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가 다수당이 되고 정권을 잡아 정치의 한복판에서 지배를 한다고 해서 대결이 사라질까?

정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  끊임없는 대결의 장이다. 중도가 주류가 된다고 해서 대결이 사라질 수 없음이다. 중도가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반드시 혼란이 사라진다는 보장은 장담할 일이 결코 아니다. 

불교나 유교에서 말하는즉, 철학적 의미의 중도는 인간의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며 지향점일 수 있으나 결정의 연속인 정치에서까지 완벽한 기능을 수행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중도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정치(이념)를 지배하는 것은 정책이다. 정책에 중간이 가능할까? 모든 정책적 사안이 중용의 가치만으로 가능할까?

불교에서는 유교와 달리 중도를 이론적 중도와 실천적 중도로 구별한다.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다시 말해서 실천적 중도로 볼 때 중도로만 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정책의 결정은 결국 o냐 x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천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것이 정치에서는 중도를 표방하는 집단의 주장처럼 완벽하게 가능하지 못한다고 본다.

온건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균형 잡힌 삶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도 그렇게만 된다면 이상 국가가 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의 간격은 멀다. 그래서 중도정치를 사전에서는 ‘理想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정치의 중도는 법치도 도치도 아닌 중도적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위정자의 도치가 부족할 뿐 법치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 법치와 도치의 중간적 입장을 견지할 수가 없다. 유교에서 말하는 철학적 의미의 중도정치를 대입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보수도 합리적이고 온건할 수 있고 진보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두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다 보니 그 싸움에 이골이 난 국민이 있을 뿐이지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중도정당을 지향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또한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을 푸는데 반드시 중도 정치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록 공자는 고기양단(양끝을 살피라) 이라했지만 보수나 진보도 어느 한 쪽이 아닌 합리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 수 있으나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갈등이 조정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黨利의 문제에서 중도라고 특별할 건 없다.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에서 중도의 개념이 통용될 수 없음을 가장 쉽게 설명한 사례를 보자.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저서 <프레임전쟁>에서 중도파들이 모든 척도에서 중앙에 있다는 일관성 있고 모순 없는 정치적 계산은 결코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많은 문제들이 '예/아니오' 문제이지 척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사형은 존재해야 하는가, 아닌가? 어떤 사람을 반만 죽이거나 중간 정도만 죽일 수 없다. 

3진 아웃이 아닌 5진 아웃을 선택하는 것이 중도인가? 낙태의 중도적 선택은 무엇인가? 라는 예를 들며 정치적 이슈에서 결코 중간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신을 중도파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은 이슈 영역에서 진보와 보수가 내재되어 있다 했고, 중도는 정치적 개념이 아니며 중도가 아닌 ‘이중개념주의자’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는 어떤 사안이든 결정의 역할이다. 결정하지 않고 넘기는 것은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한 번 따져보자.

최근에 벌어진 5.18망언 해당 의원에 대한 징계 여부를 물었다. 찬성하는 쪽이 월등히 많다. 징계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중도 입장은 무엇인가? 중도는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가?

또 하나, 국가 안보에서의 중도는 무엇인가? 사드 배치를 예로 들어보자.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가, 아니면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중도는 어떤 입장인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와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에 중도식의 해법이 있는가?

중도가 결코 만사여의일 수는 없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결론은 중도 역시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진보와 보수가 내재된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그것이 중도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 정치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집단이 몇몇 사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중도의 본질에 따라 중재가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의석 수의 구조적 한계로 인한 역할의 수행일 뿐이다. 즉 정치적 관점에서 말하는 캐스팅보트에 국한된 행위라는 것이다.

더욱이 중도 구성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도 결코 중도적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정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을 보면 극단적 세력 못지않다. 중도 어디에 상대를 조롱하고 극단적 비판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는가? 그들의 말대로 그들이 추구하는 중도는 이론적일 뿐 결코 실천적이지 못하다.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중도는 양비론이 전부일뿐이다. 또한 경계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전자에서 언급한 대로 중도를 표방한 것은 부동층을 흡수하기 위한 수단이고 전략일 뿐이다.  비약하자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들로 비칠 수도 있다.

정치의 핵심인 정책은 양쪽을 다 선택할 수도 양쪽을 다 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런 기능을 수행하기에 중도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필자는 철학의 빈곤함으로 인정하여 중용의 거대한 담론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도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사회가 조용해진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중도의 철학적 개념을완벽하게 체화시키지 못한 중도에게도 자신의 이익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도정치를 숭상하는 무리들을 탓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사전에서 중도정치를 이상 정치라고 표현한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심춘보 대표/발행인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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