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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붉은 홍매는 인경왕후의 슬픈 이야기다.
  •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 승인 2019.03.2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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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지리산 화엄사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신 각황전(覺皇殿)과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원통전(圓通殿) 사이에는 지금으로부터 316년 전 1703년 성능(聖能) 계파(桂坡 생몰미상) 선사(禪師)가 각황전과 원통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는 한 그루 붉은 매화나무가 있다.

지리산만큼이나 길고 깊은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피는 분홍빛 꽃잎이 너무 붉어 흑매(黑梅)로 불리기도 하는 매화꽃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들었던 것은, 숭유억불의 조선왕조에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불사(大佛事)를 마치고,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세세생생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는 비석을 세울 만도 함에도, 오직 한 그루 붉은 매화나무를 심어놓은 선사의 마음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었다.

20여 년 전 동리산 태안사를 중심으로 도선사(道詵寺 현 사성암)에서 그 시작을 열어간 삼한통합 고려창업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화엄사지(華嚴寺誌)”를 샅샅이 뒤적이며, 전설 하나까지 더듬어 찾아보고 비교하여 보는 그런 세월 속에서, 선사가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한 그루 홍매를 심은 깊고 그윽한 뜻을 알게 되었다.

부연하면, 본시 설화라는 것이 허황한 것이거나, 아니면 역사를 그럴싸한 이야기로 꾸며낸 것이라, 익히 알려진 각황전 불사에 얽힌 선사와 화엄사를 드나들며 얻어먹고 살던 늙은 노파의 이야기와,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재위 1661~1722년)의 공주가 어쨌다는 이야기는, 당시 숭유억불의 조선왕조에서 즉 숙종(肅宗)의 치세에서(재위: 1674년∼1720년)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왕실의 불사를 감추고(전국에서 유생들의 반발이 극렬하였을 것이다.) 화엄사의 영험함을 널리 알리는 홍보 차원으로 꾸며낸 것이기에 본문에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꾸며낸 이야기라 하여도, 결코 꾸며서는 안 되고, 꾸며낼 수 없는 법도와 문화가 있는데, 왕과 왕비와 공주에 관한 칭호다.

그러므로 화엄사 각황전에 관한 전설을 역사 속에서 검증하여 보면, 숙종의 치세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공주와 왕비는 1680년 음력 10월 천연두 즉 두창으로 발병 8일 만인 26일 2경(二更: 오후 9시~11시) 20세의 젊은 나이로 경덕궁(慶德宮)에서 요절한 숙종의 원비(元妃) 인경왕후(仁敬王后,1661년~ 1680년)와 어려서 죽은 두 딸 가운데 장녀(1677~1678)의 슬픈 이야기임을 알 수가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인경왕후의 차녀는 1679년 10월에 태어나 그 해에 곧 죽었으니 해당되지 않고, 숙종에게 공주는 인경왕후가 낳고 곧 죽은 두 딸이 전부이므로, 연잉군 즉 영조(英祖,1694∼1776)의 모 숙빈 최 씨도 아니고, 장희빈은 물론 후사를 생산하지 못한 인현황후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익히 알다시피 장희빈(1659년~1701년)과 인현왕후(1667년~1701년) 사이에 생사를 넘나드는 시기와 질투로 왕실이 무고(誣告)와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 극심한 시대였음을 상기하면, 숙빈 최씨(1670년~1718년)가 아들 연잉군(영조대왕 1694년~1776년)을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각황전의 불사를 이루었다는 일부의 주장은, 이거야말로 꾸며낸 이야기로 허구다.

지금까지 열거한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유교사상을 유일한 지배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조선의 정치와 숙종과 유림(儒林)들의 관계, 그리고 각황전이라는 대규모 불사(佛事)를 준비하고 완성하는 과정을 대입하여 보면,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을 건립하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 깊고 그윽한 이야기는, 숙종의 원비(元妃) 인경왕후와 그 장녀에 관한 이야기 즉 인경왕후의 지극한 불심(佛心)을 은밀히 전하는 역사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각황전과 원통전을 완성 원력(願力)을 이룬 이듬해 1703년 선사가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붉은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은 뜻을 헤아려보면......

두창(痘瘡 천연두)으로 아름다운 얼굴 가득 붉은 열꽃을 피우며, 20세에 요절한 비운의 왕후 인경왕후의 불심과, 그녀가 나고 죽음이 없는 극락정토에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환생하기를 세세생생 발원하는 선사의 간절한 마음임을 알 수가 있다.

요약하면, 각황전과 원통전의 불사를 마친 선사가 심어놓은 지리산 화엄사 붉은 홍매는, 열 달 배를 앓아 낳은 두 딸을 가슴에 묻고, 자신마저 두창으로 요절한 인경왕후의 슬픈 금생(今生)의 한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선사의 간절한 마음이니, 홍매가 살아있는 한 인경왕후(仁敬王后,1661년~ 1680년)를 위한 선사의 염불소리는 세세생생 살아서 이어질 것이다.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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