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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늙은이들이 옛 늙은이 노자(老子)와 무위의 차를 논하며
  •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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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自然)이란, 처음 스스로 생긴 그대로 무위(無爲)이니, 특별히 만들어지는 형식이 있을 수 없는 무형(無形)이고, 무위 무형이니 끊임없이 변하는 그대로 무상(無常)한 것이 본질이고 실체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우리네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와 가식이 있을 수가 없고, 아름답고 추함도 존재하지 않으며, 도(道)와 덕(德)의 도덕이 따로 있을 수가 없고, 진실과 거짓이라는 것 또한 있을 수가 없다.

이뿐이 아니다. 자연은 무위(無爲) 무형(無形) 무상(無常)이라, 오직 끊임없이 스스로 변하는 변함이 있을 뿐, 처음부터 고정된 것도 없고, 만들어진 형식도 없는 것으로, 말 그대로 자연일 뿐인데, 자연에 무슨 도덕이 있다고, 이 야밤에 찾아와서 뜬금없는 헛소리냐?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엊그제 끝난 하동 화개에서 열린 야생차 축제에 갔다가, 술을 끊었다는 촌부가 생각이 나서, 좋은 명차를 구해왔다며 찾아온 이와 차(茶)를 마시며, 그가 화개동천에서 만났다는 기인들과 명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치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 무위의 신선이 되었다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라도 만나고 온듯하여, 그에게 내가 던진 물음이다.

노자(老子)가 정말 실존했던 사람 노자인지, 생을 달관한 옛 늙은이가 나름 후손들을 위해, 기술하여 놓은 처세술을, 후세 사람들이 책으로 만들어놓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억지로 짝을 지워놓은 무위와 도덕이 배필로 잘 맞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촌부의 물음은, 무위는 그 자체로 자연(自然)이라, 따로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차 맛 또한 무위라 예(禮)와 도(道)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차 맛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이나, 노자가 무위(無爲)에서 말했다는 도덕(道德)은, 사람이 사람의 처세를 위해 조작한 인위(人爲)로 맞지 않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는 맞지만, 무위에서 도덕을 말하는 것은, 마치 정해진 참맛이 없어 사람마다 다른 차의 맛을, “바로 이 맛”이라며 아는 체를 하고 있는, 장사꾼과 같다는 말이다.

오늘날 차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일상에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너나없이 이미 오래전에 가고 없는 옛사람들이 즐긴 일미(一味)를 알고 있으며, 이것이 다향이고 참맛이라며 단정을 해버리고 있는데, 특히 옛사람들이 즐긴 차를 재현했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사람들이나, 또는 그 참맛을 알고 즐긴다며 자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야말로 망상에 빠진 것으로, 진정한 차의 참맛을 모른다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차나 마시고 가라는 화두로 유명한 조주선사가 즐긴 차 맛은 딱히 이것이라고 전해진 바가 없고, 고려의 선승 혜심선사가 섬진강 바람으로 즐긴 다향을 아는 이 역시 없고,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제자인 소치 허련이 가져다준 초의선사가 만든 차를 받고 “차 향기를 맡으니 곧 눈이 떠지는 것만 같다” 하였는데, 그 향기가 어떠한지를 누가 안다는 것인가?

초의선사가 지리산에서 집필을 시작한 다신전(茶神傳)에 전하는 차 맛 또한 선사가 즐기며 느낀 자신만의 방식이고 미각(味覺)일 뿐이라, 선사의 면전에 앉아 마시는 사람도 알 수 없는 선사의 차 맛을, 지금의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고 헛된 망상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한마디 덧붙이면, 초의선사가 기술하여 전한 “다신전”이, 청나라에서 발간된 “다경채요(茶經採要)”를 인용한 것으로, 삶의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의 것을 베낀 것이니, 애초에 초의선사가 전한 차 맛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으로, 오늘의 사람들이 차를 만들어, 이것이 선사가 말한 차의 참맛이고 향기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기망하는 것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본래 차의 향과 맛은 경계가 없고 분별이 없는 무위의 깨달음이라, 오직 마시는 사람만이 오감으로 느끼고 아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이 차의 향기에 경계가 있고 맛에 분별이 있다 한다면,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오감이 일으키는 착각이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착각 속에 있는 차의 맛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거니와, 혹 어떤 사람이 안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곧 망상이고 어리석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초의선사를 보면, 다신전 발문에 조주차(趙州茶 조주선사의 차 맛)를 알려고 하여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청나라의 것을 베꼈다고 실토한 사례에서 보듯, 불행하게도 초의선사가 전한 다향과 맛은 진정한 이 땅의 우리들이 음용했던 것이 아니며, 선사 자신은 오감으로 느끼는 다향 즉 무위의 참맛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 남의 흉내만 내면서 남이 말한 맛만을 찾다가 죽은 사람으로, 허상만을 쫓아다닌 허깨비였을 뿐이다.

부연하면, 이러한 연유로 지난 4월 촌부가 게재한 “민가에 전해오는 차(茶)를 찾은 이야기”에서 언급한, 문척면 중산리 벽봉(碧峰) 정동주 선생이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아 아무 때고 1년 내내 편하게 만들어 즐기는 차를, 우리네 전통차로 꼽은 것이고........

평소 촌부가 자주 가는 구례읍 유일한 전통찻집 “향아‘에 가면, 원시 자연의 그대로인 차의 참맛을 진미로 맛볼 수는 있는 곳이고, 주인인 황선생은 초의선사가 찾지 못한, 조주선사의 차 맛을 이미 아는 사람이니, 누구든 언제고 편하게 찾아가서 차를 마시며, 스스로 느끼는 차 맛을 주인에게 확인하여 보기를 권한다.(조주선사가 말한 차 맛을 마음으로 충분히 느끼고, 나름 현실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의미다.)

야밤에 둘이서 뜬금없는 헛소리들을 주고받다, 그에게 식어버린 차를 따라주면서, 이 맛이 어떠한지, 이것이 자신이 잘 안다고 한, 옛사람들이 즐긴 다향이고, 다신전에서 말한 맛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엊그제 화개에서 마신 맛인지 일러 보라 하였더니, 술을 사 올걸 괜히 차를 사 왔다며 웃었다.

옛 늙은이 노자가 말했다는 도덕(道德)은 한낱 인간들의 탐욕(구하고 버리는 유무형의 모든 것들)을 위한 술법(術法) 즉 얄팍한 처세술이고, 무위의 차 맛은 무위의 깨달음으로 나가는 참맛이니, 오늘의 늙은이들은 밤새 차나 마시자며 웃었다.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칼럼니스트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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