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6.18 화 16:24
상단여백
HOME 사회 교육
현장을 모르는 학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 승인 2019.05.28 23:16
  • 댓글 0

갈등이든 공론이든 현장이 답이라는 믿음은 여전하나, 현장이란 곳이 복잡미묘, 변화무쌍하여,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상황을 파악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전에 없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닥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관련 논문을 뒤져보곤 하지만 문제 해결에 답을 얻거나 도움을 받은 적이 별로 없다. 현안을 다루고 있는 논문이라도 현장을 깊고 오랫동안 들여다본 학자가 거의 없다. 현장을 단 한차례라도 다녀가 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글들은 수 없이 많은 인용과 함께 논(論)에서 시작해서 논(論)으로 끝난다.

나는 부안사태 이후 부안군과 부안공동체회복을 위한 활동을 2008년부터 3년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흥미로웠던 일 중 하나는 내가 부안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인 2004-5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부안을 연구해온 일본인 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고배대학 와다나베 교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극심한 갈등 이후, 지역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매년 부안을 방문한다고 했다. 타국의 한 지역이 그의 연구 사이트였던 셈이다.

1년간 머물렀던 동경대에서도 내가 있던 자연과학 분야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 교수들도 국내든 해외든 대부분 자신의 연구 사이트를 갖고 있었다.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했던 케임브리지 대학(생태학 분야)에서는 국내(영국)뿐 아니라 아프리카에 수십 개의 사이트를 두고 재집 드나들 듯했다. 인문·사회 분야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경험과 증거에 기반을 둔 논리 구성, 이들이 학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였다.

우리의 경우, 어떤 이들은 학자가 ‘현장을 알면 다친다’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학자가 현장을 보는 것, 그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고, 그건 때때로 권력자들에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내는 것이 현장의 증거를 들이미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터...

아니면 고담준론(高談峻論)을 가지고도 행세를 할 수 있는데 뭐가 그리 아쉬워 발에 흙 묻히며 나다닐 필요가 있겠는가, 현장에야 허접한 아랫것들이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도 한국 사회에서 지위 보전하려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인데...

이런 학문 풍토에서 학자가 대접받을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