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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의 묘비명, “나는 내 조국과 국민을 사랑했고 존경했으며 그런 조국의 훌륭한 국민과 함께해서 행복했다.”
  • 심춘보 대표/발행인
  • 승인 2019.06.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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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은 고인을 기념하기 위해 묘비에 새기는 글이다.

생전에 고인이 추구했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묘비에 새겨진 글이라고 해서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 냉소 등 다양한 표현을 한다. 본인이 미리 써놓는 경우도 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기도 한다.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스님>의 묘비에는 “괜히 왔다 간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극작가이면서 소설가, 비평가였던 <버나드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쓰여 있고, 배재학당의 설립자인 <아펜젤러>의 묘비에는“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천하로 끝난 <김옥균>은“비상한 세대에 비상한 인물이 비상한 재주를 작조 태어났으나 끝내 비상한 공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새겨져 있고, <간디>의 비문에는 국가 멸망의 전조인 7가지 사회악(△원칙 없는 정부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길게 썼던 짧게 썼던 묘비명을 보면 고인이 살다간 전부를 느낄 수 있고 귀감이 되고도 부족함이 없는 명문들이다.

6월11일 그가 믿는 주님은 이희호 여사에게 고종명의 복을 내렸다. 비록 천수를 다했다지만 국민은 일제히 애도의 하고 있다. 이 여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예의를 다하기 위한 추모 인파로 장례식장은 인산인해다.

김대중의 아내가 아니라 이희호 개인만으로도 충분히 애도하고 기릴 인물이다.

여성인권 신장에 기여한 1세대 여성 운동가이기도 하다. 또한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힘을 쓰기도 했다.

오래전(1987년) 필자가 동교동을 방문했을 때 이색적인 문패가 시선을 끌었다. 가부장적 우리 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의 문패가 나란히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부부, 남성과 여성을 종속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여기는 두 분의 생각이 나란히 걸린 문패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두 분에 관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그 에피소드에는 이희호 여사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부부이면서 평생 동지였던 두 사람은 천상에서도 영원한 부부요 동지일 것이다.

공개된 유언을 보면 마지막까지 국가와 민족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가 있어 김대중이 있을 수 있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조의 여왕이었다.

이제 국립묘지에 안장되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이희호 여사의 묘비에는 어떤 글귀가 적힐까?

필자는 감히 “나는 내 조국과 국민을 사랑했고 존경했으며 그런 조국의 훌륭한 국민과 함께해서 행복했다.”라고 적어보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 곁에서 영면을 기원한다.

▲필자가 한동안 받아보았던 크리스마스카드

 

심춘보 대표/발행인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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