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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년(1929 ~ 1945)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15살 어린 소년을 고문으로 죽인 일본의 만행을 고발합니다.
  • 이상석 역사 가문이야기 대표
  • 승인 2019.08.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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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년(朱在年)은 농사를 짓던 아버지 주순지(朱順之)와 어머니 김순심 사이에서 1929년 1월 29일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도 금성리에서 3남 4녀 중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일가인 주상규 훈장으로부터 한문과 한글 배우고 1939년 4월 1일 돌산공립국민학교에 입학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국민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1943년 3월 25일 우수한 성적으로 돌산공립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895년 명성왕후가 왜인들로부터 살해되고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로 폐위되자 1909년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서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10년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합방하고 1919년 3월 19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의 무차별 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감금당했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전해 듣고는 울분을 느꼈다.

그리고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데 임시정부에서 독립을 하기 위해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1920년 6월 7일 홍범도장군이 왜군 157명을 죽이고 2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대승을 거두었다는 말을 듣고는 자긍심을 느꼈다.
1932년 4월 중국 홍커우공원에서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어린 주재년은 크면 독립운동가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1941년 12월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이르키고 군수품을 만들면서 조선에서 군수품을 공출하는데 밥그릇, 국그릇, 수저에 심지어 어린아이들을 동원해서 산에 소나무 송진을 따오게 하고 동내 청년들을 끌고 가고 여수에 비행장을 만들고 돌산도에 해안포 진지를 만들면서 남의  땅을 강제로 빼앗는다는 말을 들었다.
주재년의 작은형 주재연(朱在淵)의 병 치료를 하기 위해서 집에 들렀던  한약사로부터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일으켰는데 일본은 곳 패망할 것이고 조선은 미국의 덕으로 해방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1943년 9월 초순 여수에 나갔던 동네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 동네에 유포하자 주재년은 그달 23일 오후에 땔감용 나무를 하러 뒷산으로 가던 도중에 목화밭 돌담 돌 4개에 돌로 낙서를 했다.
''朝鮮日本別國(조선과 일본은 별개의 나라다.)
日本島鹿敗亡(일본 섬 놈들은 망한다)
朝鮮萬歲(조선만세)
朝鮮之光(조선은 빛날 것이다.)라는 20자를 새겨 놓았다.
주재년이 낙서를 한 곳은 금성리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로 소문은 삽시간에 근동으로 퍼져 나갔다.ㆍ

며칠 후에 이사실을 알게 된 일본경찰  100여 명과 경비정 8척이 금성리로 몰려와서 며칠 동안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글을 새긴 사람을 찾 다가 못 찾자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글을 쓴 사람이 자수를 하지 않으면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을 하자 어린 주재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수를 했다.

주재년이 자수를 하자 일본 경찰은 주재년을 여수 경찰서로 연행을 하고 15살 먹은 아이 혼자서 한일이 아니라고 판단을 한 일경은 주재년을 때리면서 누가 시켰냐고 다그쳐도 주재년은 혼자 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15살 주재년을 의자에 묵어 놓고 전기고문을 하고 거꾸로 매달아 놓고 물고문까지 하였다.
고문에 못이긴 주재년은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는 꿈을 꾸고 바위에 새겼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 경찰은 주재년으로부턴 더 이상 다른 말을 듣지 못하자 돌산도 금성리를 찾아가서 가족과 친척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취조를 했으나 공범이나 주동자를 찾지 못했다.
일경은 어린 주재년을 연일 고문을 하자 어린 주재년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자 구금 117일 만인 1944년 1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선고를 내렸다.
''피고인은 조선임시보안령 제21조에 의하여 징역 8월에 처하고 피고인의 나이가 어리고 개전의 정이 있음으로 형법 제25조에 의하여 4년간 이 형의 집행을 유예할 것을 판결한다."

형 집행유예가 내려지자 일본경찰은 사경을 헤매는 주재년을 돌산도 작금부락 집으로 데려다 주자 어머니 김순심 여사는  주재년을 지극정성으로 치료를 했으나 그해 4월 8일 주재년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주재년이 죽자 가족들은 주재년을 낙서를 했던 목화밭 옆에 묻어주었다.

2005년 7월 26일 여수시민 서갑식씨는  김충석 여수 시장실을 방문하고 주재년을  독립유공자로 보훈처에 추서를 신청하자고 건의하자 여수시장 김충석은 주재년의 기록을 찾아보라고 담당 공무원에게 지시를 했다.
그해 7월 28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이던 주재년의 판결문을 찾아내고 2006년 4월 21일 전라남도지사와 여수시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주재년의 판결문 내용을 검토하고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년 5월 30일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에 있는 주재년 열사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이상석 역사 가문이야기 대표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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