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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 그리고 조국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은 설계되지 않은 비극
  • 심춘보 대표/발행인
  • 승인 2019.10.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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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게 웬 윤지오와 조국인가 싶겠으나 이들 둘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공통점이 있다.

기대를 가졌던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이 그것이다.

윤지오(본명 윤애영)는 알려진 대로 장자연과 연예계 선후배 사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출생했지만 2000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연예계 활동과 학업을 병행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연예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배우였다. 가족이 모두 캐나다 국적이지만 자신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2009년 장자연 사망사건의 증언을 했다. 그러나 사건은 묻혔다.

그러던 중 장자연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20만 명이 넘는 서명으로 재수사의 급물살을 타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2018년12월 입국 장자연 사건을 다시 증언했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녀에게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당연한 일이었다. 후원이 줄을 이었다. 그녀가 쓴 책 '13번째 증언'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많은 동료 연예인들도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안민석을 비롯한 다수의 셀럽들은 그녀와 동석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방송국을 다니면서 자신이 겪었다던 장자연 관련 내용들을 쏟아냈다. 그녀가 쏟아내는 기득권 세력의 부도덕에 국민은 치를 떨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경찰의 미온적인 태도가 도마에 올라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녀의 활약 덕으로 장자연 사망사건의 진실이 곧 세상에 드러날 것 같았다. 그녀는 견고한 기득권의 '부도덕 카르텔'을 흔드는 정의의 화신으로 등극했다.

그녀는 증언을 통해 연예인을 농락한 언론 법조계 등 우리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의 부도덕성을 만 천하에 까발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응징할 것처럼 세상은 들떴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 병구완을 위해서라며 캐나다로 출국했다. 어머니가 아프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캐나다가 아닌 한국에 있었다. 그녀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거짓말이라고 볼 때 그녀는 도망을 친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그때부터 대중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녀가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그녀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반박이 법조인과 작가를 통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장이 책 홍보와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스스로 조작한 허위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피소된 상태다. 출석을 요구하고 있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 아예 들어올 마음이 없어 보인다. 드러난 민낯에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후원금을 돌려주겠다고 했으나 그 역시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돌려줄 방법이 없다는 주장)

그녀를 응원했던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허탈했다. 그들도 그녀를 사기 등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언급한 대로 한때나마 그녀는 꺼진 정의의 등불을 밝히는 성냥이었다. 팬클럽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를 보호해주겠다고 자청하는 사람도 줄을 이었다. 어떤 이는 그녀를 정치권으로 보내 자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위선자로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두 동강이 낸 주연은 조국 장관이다. 그를 캐스팅한 감독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조국이 무대에 올라오기 전 많은 관객들은 그를 이 시대 최고의 정의의 사도로 여겼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로망이었다. 신성일 뺨치는 준수한 외모, 문재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화려한 언변, 포청천과도 같은 전혀 때 묻지 않은 정의감. 그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여의봉을 든 손오공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대중은 환호했다. 그는 이 시대의 메시아와도 같았다.

정권이 바뀌고 그는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반복 되는 인사검증 실패는 그를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청안시가 백안시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강직한 대간이 반드시 훌륭한 육조판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영전을 했다. 사법개혁의 특명을 받고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명되는 순간부터 그의 민낯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진보의 가치가 진보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를 따랐던 많은 젊은이들이 돌아섰다. 연일 쏟아지는 의혹은 차라리 비리 백화점이다. 스스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과거의 조국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가히 손오공이다.  그의 허물을 보고도 검찰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묻으려 하고 있다. 이중인격자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여전히 문 정권의 희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선은 별것이 아니란다.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은 사법개혁이 목적이 아니라 차기 대권 후보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가담항설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감독과 주연 배우로 인하여 많은 관객을 동원은 했지만 결국 그것은 나라를 두 동강이로 잘려 버리는 결과로 귀착되었다. 매주 토요일 서초동과 광화문은 세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주변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민폐다.

서로 밀리지 않기 위해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용광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대통령은 고기양단(두 끝을 살피다)의 의지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지지자들만 보고 있다.

조국도 윤지오와 마찬가지로 사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부인은 검찰청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영어의 몸이 될지 아니면 의혹이 해소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그는 엄청난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윤지오가 검찰의 호출에 귀머거리 행세를 하고 있다면 조국 역시 국민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과거 자신의 기준이라면 내려와도 벌써 내려왔어야 하는데 불과 몇 년 만에 그의 도덕적 기준은 5G 시대만큼이나 진화했다. 아주 못되게 말이다.  내려오면 죽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때나마 두 사람은 정의를 밝히는 사표와도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이 되레 국민의 지탄 대상으로 전락했다.

윤지오는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대중을 속였다는 의혹, 조국은 위선으로 대중을 농락하고 입신양명의 기회로 삼았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대중은 그들 두 사람의 본성까지는 모른다.

‘인간 본성의 법칙(로버트 그린)’이라는 책을 수 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속이자고 마음만 먹으면 여반장이요, 변절하고자 마음먹는 것도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누가 그랬던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은 설계되지 않은 비극이라고...

이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맺는지 지켜본다.

 

 

 

 

심춘보 대표/발행인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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