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0.22 화 20:25
상단여백
HOME 문화 예술&연예
종교인문학 교과서,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을 보고 나서.
  • 김낙훈 편집국장
  • 승인 2019.10.08 16:49
  • 댓글 0

[김낙훈의 영화 리뷰]=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2005년 '글레디 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중세 십자군 전쟁을 다룬 서사시적 영화이다.

 주인공 발리안 역에 올랜도 블룸이 나오고, 에바 그린, 에드워드 노튼, 리암 니슨, 제레미 아이언스, 가산 마수드 등 초호화 멤버들이 출연하였다.

 필자는 2005년 개봉 당시 '극장판'을 보았는데 '영 아니올시다' 였다. 역시 세간의 평도 좋지 못했고 흥행도 그저 그런, 거의 망작에 가까운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10년 만에 필자는 우연히 이 영화의 '감독판(50여분 추가)'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전혀 다른 영화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감독판'을 보면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단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도대체 아무리 봐도 단 한 장면도 가위질 당해야 할 만큼 의미 없는 장면이 없는데, 왜 그렇게 하였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최고의 점수를 주어도 모자랄 걸작 영화를 개념 없는 누군가의 가위질로 그저 그런 C급 영화로 전락시켜버린 행위에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발리안(올랜도 블룸 역)의 아내는 아이를 사산하고 충격으로 자살한다. 아내를 잃고 슬픔 속에 있는 대장장이 발리안에게 한무리의 십자군이 마을을 방문한다. 기사들의 장구류를 손봐주게 되는데 그들 중에서 발리안의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 고프리(리암 니슨 분)를 만난다. 고프리는 발리안에게 용서를 구하고 같이 가길 원하나 아내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은 발리안은 이를 거부한다.

고프리가 떠나고 난 그날 밤에 수도사로서 발리안의 죽은 아내를 묻은 이복동생이 찾아와 발리안에게 떠날 것을 종용한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발리안은 동생의 목에 걸려 있는 죽은 아내 십자 목걸이를 보고 분노한다. 수도사인 동생은 자살은 죄악이고 발리안의 아내는 자살했기에 목을 자르고 묻었을 뿐이라 항변하지만 발리안은 그를 찌르고 화덕에 넣어 태워 버린다.

 발리안은 즉시 말을 타고 먼저 길을 떠난 아버지 고프리를 찾아가 죄를 지었기에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배를 타기 위해 가던 중 마을의 영주의 아들인 고프리의 조카가 습격을 하고 그 싸움에서 이겼으나 고프리 역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항구에서 고프리는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에드워드 노턴 분)를 지켜줄 것을 부탁하며 아들인 발리안을 기사로 서임하며 이벨린의 영주자리를 물려주고 죽음을 맞이한다.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배가 풍랑을 맞아 뒤집어지고 홀로 해안에 도착한 발리안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수하들을 만나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를 알현하고 이벨린에 가 있던 중 예루살렘의 공주 시빌라(에바 그린 분)와 사랑을 나누며 잠시 행복했으나 레날드(브렌단 글리슨 분)와 기(마튼 초카스 분)의 무슬림 상단 공격에 살라딘(가산 마소드 분)이 나서게 되고 나병으로 점점 쇠약해져가던 왕도 살라딘을 막기 위해 군을 이끈다. 요새로 간 발리안은 시빌라를 요새로 들여보내고 남은 피난민이 대피할 시간을 벌기위해 살라딘의 선봉에 돌격하고 포로가 된다. 살라딘의 부대와 예루살렘 왕의 부대가 도착하고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는 살라딘에게 레날드를 처벌할 것이니 군을 물리라 요청한다. 살라딘이 군을 물리고 레날드는 감옥에 갇힌다.

무리한 출전으로 죽어가고 있던 보두앵 4세는 발리안을 불러 시빌라와 결혼할것을 바라나 발리안은 기의 기사들이 떠나는 것을 염려하여 거절하고 보두앵 4세는 시빌라의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시빌라는 아들 역시 선왕과 같은 나병인 것을 알게 되고 아들 역시 오빠와 같이 고통받을 것을 슬퍼하여 결국 아들도 신의 품으로 떠나 보낸다.
 기는 시빌라와의 결혼에 방해가 되는 발리안을 죽이러 암살자를 보내고 레날드를 시켜 살라딘의 누이를 죽인다.
 살라딘의 위협을 이용하여 시빌라와의 혼인한 기는 왕이 되고, 살아 돌아온 발리안과 선왕의 기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끌고 살라딘을 치러 나가지만 대패하고 포로가 된다.

살라딘은 레날드의 목을 베어 복수하고 그에게 치욕을 준다. 남은 병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발리안은 살라딘의 대군을 대비해 자신의 장기인 수성전을 준비하며 살라딘의 대군을 맞이하게 된다. 발리안과 예루살렘 사람들의 수일간의 분투로 성벽은 무너지나 밀려드는 살라딘의 대군을 그나마 간신히 막아낸다.
 이에 살라딘은 회담을 요청하고 발리안은 이에 응한다. 둘은 살라딘이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해안가로 이동하는 동안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하고, 예루살렘은 살라딘에게로 넘어가는 것에 합의를 본다.

풀려난 기는 발리안과 결투를 벌이지만 지고 자신을 죽이라는 그에게 발리안은 기사로 다시 일어나라는 충고를 한다. 시빌라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한 발리안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 발리안은 시빌라에게 선왕의 왕국은 이 안에 있다며 머리를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다고 믿고 왔던 그였지만 예루살렘에서 많은 일을 겪은 발리안은 진정한 평화와 구원은 인간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즉 예루살렘 성벽이나 성소 등의 외부 조건에서 그런 것을 찾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은 결국 그것을 믿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구원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신의 길을 떠나는 발리안과,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여전히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종교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짓인 지를 보여 주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종교의 근원적인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성지를 두고 벌이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지극히 일방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이 영화에 선과 악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과연 종교는 무엇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바탕에 깔고 기독교와 이슬람, 이 양측을 리들리 스콧 감독은 냉철하리만큼 중립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에서 보여 주었다.

 영화 속에서 일촉즉발의 불안한 평화가 깨지고, 결국은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했지만 이슬람이 이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애당초 누가 전쟁에서 이기고 졌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종교를 구실 삼아 독선과 아집에 빠지게 되면 결국은 몰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수장인 살라딘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명분과 실리, 둘 다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전제로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될 때를 알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였다.

 결론적으로 살라딘은 자신의 적과 타 종교에 대해 존중할 줄도 알았다.
 이는 나병으로 죽는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이 둘이 대척점을 이루고 있었던 때는 평화가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고, 보두앵 4세가 죽은 후 기독교가 독선에 빠지면서 평화는 깨지고 결국 기독교가 성지를 내주고 패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사필귀정의 결과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었다.

이들처럼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을 가질 때 , 형식을 떠나 마음속에서 구원을 발견할 때만이 화해와 평화가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종교도 정치처럼 이데올로기화하여 자기 종교만 절대 시 할 때 분쟁은 불가피해진다.

 여하튼 십자군 전쟁이 끝난지 천년이 지난 지금도 예루살렘에는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가끔 돌아가신 법정 스님처럼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절대신이 있다고 한다면, 기독교에서 믿는 예수와 불교에서 믿는 부처, 이슬람이 믿는 알라, 이런 각각의 신들이 각자가 상상하는 모습만 다를 뿐, 결국은 하나의 신이 아닐까 하는...
 이런 전제를 깔면, 결국 하나의 신을 놓고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자신이 상상한 형상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많은 종교가 존재하게 되는 것인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각자의 신을 내세워 자신의 믿음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며 상대방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일인가..
 거기에 덧붙여 종교가 신에 대한 귀의를 통한 안정과 구원의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권력에 대한 핑계로 전락했을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의 이런 종교의 본질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씹어보며 조금씩 더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과 우리는 앞 세대가 저지른 일로 서로 싸우는 것이다.“

“통곡의 벽? 이슬람 사원? 예수의 무덤?
뭐가 더 소중하지? 우열은 없다. 모두 다 소중해.
우리가 수호할 건 이 벽돌이 아니고
이 안에 사는 백성들이다.“
 

김낙훈 편집국장  dnhk06@hanmail.net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낙훈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