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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
  • 심춘보 대표/발행인
  • 승인 2019.10.2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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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공명이 앉아서도 천리를 봤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앉아서 만 리를 보는 시대다. 손바닥만 한 기계 안에 세상이 들어가 있다.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다. 바다가 넘쳐나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IT 강국이다. PC통신 시대가 나무늘보 시대였다면 지금은 빛의 시대다.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기술자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시나브로 기계에 지배당하고 있다. 중독이다.

중독에서 오는 배설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남을 향해 험한 말을 할 때 익명은 최고의 무기다. 자신의 실명이나 얼굴을 내놓고는 그렇지 못한다. 실명을 밝힐 때는 자기검열에 충실한다. 양심과 체면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99%는 익명이다. 심각성이 대두된 지 오래다. 익명으로 갈겨놓은 댓글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영혼을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는 쉬파리 똥 갈기듯 갈긴 인터넷 댓글로 인하여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연예인들을 숱하게 보아 왔다. 문명의 이기가 흉기로 변했음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잘 다듬어진 칼이 장수에게는 훌륭한 무기가 되지만 강도에게는 흉기가 된다.

절제되지 못한 감정의 표현은 상대를 숨 막히게 한다. 인터넷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정보를 취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기감정 배설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도 있다.

한 사람의 거짓말보다 그 뒤를 이은 두 사람 세 사람의 거짓말은 사실인 것처럼 들린다. 집단이 움직여 여론의 물꼬를 바꿔 놓아버리기도 한다. 실명제라면 댓글 알바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났겠는가? 공자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스승이라고 했지만 한비자는 세 사람이 만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 인터넷을 보면 한비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세 사람은 틀림없이 익명의 억지이기 때문이다.

훈훈한 미담에까지 악담을 퍼붓는다. 익명이다.

교묘하게 허위사실을 만들어 낸다. 익명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육두문자를 남발한다. 익명이다.

혐오와 선정적 표현이 도를 넘었다. 익명이다.

국정원보다 한 수 위의 신상털이가 횡행한다. 익명이다.

바른말을 하더라도 진영에 누가 되면 어김없이 십자포화를 가한다. 집단의 익명이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두고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는 실명제 반대의 핵심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자유를 누림에 책임이 따른다. 누리는 자유만큼 짊어져야 할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익명의 커튼 뒤에 숨는 것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자신의 주장이 당당하고 떳떳하면 숨을 이유가 없다. 복면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신을 숨기기 위함 아닌가? 왜 숨기려 할까? 그 역시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의견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통제하지 못한 댓글이 무고한 사람을 헤치는 결과를 초래함에도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볼 수 없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출발했다. 광장의 민주주의는 서로 얼굴을 맞댄 토론이었다.

댓글이 여론이라고 한다. 맞다 . 조작된 댓글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러나 그 댓글도 거의 대부분 익명이다.  자신의 주장과 다르면 공격하는 것은 양념이다. 책임 없는 자유를 누리는 셈이다.

악플을 염려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다.

과거 잠깐 동안 실명제를 도입 이후 악성 댓글이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익명을 행사한다면이야 굳이 실명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스스로 제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으로라도 제어 기능을 마련해야 한다.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면 법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요컨대 책임을 없애는 방법은 책임을 이행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실정이라면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스스로 만드는 것은 틀렸다.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실명제가 폐기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실명제를 찬성하는 의견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한다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정치권도 더 이상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떨어진 실효성을 보완하는 지혜를 모으면 될 것이다.

물론 아무리 엄격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별 수 없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이 따른다면 인식도 점차 변화할 것이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처럼 말이다.

며칠 전 설리라는 젊은 여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악성 댓글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한다. 과도한 표현의 자유가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다. 손가락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다.

손가락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

“말이 쉬운 것은 결국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

 

 

심춘보 대표/발행인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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