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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석의 가문이야기연주 현 씨(延州 玄氏)
  • 이상석
  • 승인 2019.10.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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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현 씨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평안북도 연주군(延州郡 : 평안북도 영변군) 연산(延山)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용감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19살 때 북방의  이민족이 평안도를 침입하자 연산에서 의병을 일으켜서 이민족을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우자 고려 의종은 현담윤을 가상히 여겨 공을 치하하고 연산부사를 제수하고 명문가 규수와 혼인 하게 하였다.

북송이 여진족의 공격을 받자 북송의 마지막 왕 흠종(欽宗)이 고려 인종에게 지원 병력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자 인종의 명으로 북송의 군사와 함께 여진족을 몰라내는데 큰 공을 세우자 북송의 흠종이 큰 상을 내리고 현담윤의 귀국길에 북송 사신을 함께 보내서 고려 인종에게 크게 치하하게 하고 높은 벼슬을 내릴 것을 건의하였다.
 
1174년 정중부의 무신정권에 대항해서 병부상서 겸 서경유수 조위충이 병난을 일으키자 현담윤은 큰 아들 현덕수(玄德秀)와 둘째 아들 현이후(玄利厚)를 데리고 조위충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우자 명종은 현담윤에게 평장사를 제수하고 연산군(燕山君)에 봉하고 큰 아들 현덕수는 내시지후(內侍祗候)에 제수하고 작은 아들 현이후는 권행병마사사(權行兵馬使事)를 제수하였다.

그 후 현담윤이 죽자 세 아들 현덕수(玄德秀), 현이후(玄利厚), 현덕유(玄德裕)는 아버지 현담윤을 시조로 모시고 고향인 연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큰 아들 현덕수는 내시지후를 지낸후 권감창사사와 안남부사를 거쳐서 경상도  안렴사를 역임한 후 병부상서를 지내고 팔거군(八莒郡 : 경상북도 대구, 칠곡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이후 다시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 대구, 칠곡의 옛 지명)으로 이봉 되었다.

그 후 현덕수의 후손들은 성산에 정착해서 살면서 현덕수를 시조로 모시고 성산을 관향으로 삼고 연주 현 씨에서 분적하였다.

둘째 아들 현이후는 권행병마사사를 지낸 후에 경상도 안렴사를 지내고 광성군(廣城郡)에 봉해졌다.  셋째 아들 현덕유는  1186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부시랑과 예부시랑을 거쳐서 서경유수와 금자광록대부를 지내고 이어서  참지정사와 대사공을 지내고 회원군(會原君 : 경상남도 창원시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그 후 현덕유의 후손들은 현덕유를 시조로 모시고 창원을 관향으로 삼고 연주에서 분적하였다.

시조의 9세손 현규(玄珪)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군자감정, 판군자감사를 지내고 고부군수와  홍문관교리, 이조정랑을 지냈다.
후손들은 오래 세거한 선주(星州 : 성주군)를 관향으로 삼고 현규를 시조로 모시고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연주 현 씨 현대 인물로 현승종(玄勝鍾)은 대한민국 제24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현승종 전 총리

연주 현 씨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7명, 무과 6명, 생원시 2명, 진사시 5명 등 모두 20명을 배출했다.

2000년 통계청 조사 결과 연주 현 씨는  59,09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상석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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