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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손학규를 망쳤는가?
  • 심춘보 선임기자
  • 승인 2019.11.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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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까 말까를 몇 번 고민했다. 三思一筆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음도 있지만 대중에게 썩 관심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도 없지 않았다. 또한 어찌 됐건 과거 인연의 끈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아 대의(?)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고, 일말의 애정이 남아 있어 졸필을 주저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은 사실상 분당 상태다. 유승민의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 일부가 바로 옆방에 딴 살림을 차리고 독자 행동에 나선지 한참이다. 루비콘강을 건넌지 오래다. 자유한국당과의 혼담이 오가 곧 김무성과 재회의 뽀뽀를 할 것 같아 보이더니 독자 창당 쪽으로 급선회했다. 동조자들조차 멀미 날 지경이다. 무슨 피치못할 곡절이 있음이다.

바른미래당이 내홍에 휩싸인 것은 지난 재보궐선거 때다. 3%대의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손학규 대표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손학규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벼락을 맞은 셈이다.

낙선은 뻔한 일이었고 얼마의 득표율을 올릴 것인가의 문제였으나 이마저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당이 낙선을 염려해서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불임정당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득표율 저조를 이유로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표를 물러나라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명분이 약했다.

얼마 전에 밝혀진 문건을 볼 때 그들이 손학규 대표를 주저앉히려 한 것은 음흉(?)한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 났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행보에 손학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확신하고 득표율 저조를 핑계로 추잡한 짓까지 서슴지 않고 해치우려 했던 것이다.

정치의 본질이 권력투쟁인 점을 감안할 때 유승민 일파의 계략도 권력투쟁의 일환임에는 분명하다. 거기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손학규의 견결한 의지도 인정할 일이다.

유승민 일파가 줄기차게 퇴진을 요구함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바른미래당을 자유당에 통째로 바치려는 수작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이해한다.

손학규의 눈으로 볼 때 갈수록 늘어나는 부동층에 눈길이 쏠렸을 것이다. 마치 굶기를 밥먹듯하던 빨치산이 건빵을 벽돌 크기로 본 것처럼 커 보였을 것이고 양당의 대립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천재일우의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중간지대가 넓어지고 있고 우리에게 기회가 온다고 줄기차게 외쳤다. 바른미래당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삼아...

논리 자체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당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과 이론의 간격이 다른 어떤 사안보다 큰 것이 정치다.

바른미래당의 내분이 없이 줄기차게 자강을 다졌더라면 일말의 기대는 해 봄직했다.

그러나 내분이 터지면서 상황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같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벌어진 두 가지 사례에서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에 아쉬움을 갖는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말이 있다. 깐죽거리는 ‘맹획’을 일곱 번 잡아 일곱 번을 놓아준 제갈량의 아량(혹은 전술)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편이 될 수 없다면 죽이는 것이 낫다는 마우쩌둥과 달리, 나와 생각이 다른,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제갈량의 전술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태경 이준석의 징계는 과했다는 말이다.

부드럽고 점잖게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는데도 강수를 택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지만 그들에게 경고 정도의 징계가 내려졌더라면 손학규의 통 큰 아량에 박수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인 그들조차도 놀랐을 것이다.

강하게 공격하면 강철에 총알을 쏘는 것과 같이 반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손학규 정신은 통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상당히 어색한 장면이었다.

어차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이 났더라도 그런 통 큰 결단을 보여주었더라면 손학규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을 것이다. 링컨의 말처럼 적을 친구로 만들면 자연히 적이 없어진다고 했듯이 비록 친구로 만들 수는 없어도 만드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더구나 하태경 같은 경우는 고두사죄까지 했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물리학 용어 중에 ‘엔트로피’라는 것이 있다.

손학규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당의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다. 당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입장 즉, 높은 가치의 요소가 종속된 당원 즉, 낮은 가치의 요소와 같아지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두 번째, 사퇴 요구에 ‘추석 때까지’라는 배수진을 쳤다. 추석 때까지 10%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사퇴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추석이 지나 설이 다가오는데도 6%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배를 띄우고 싶은 마음이야 한 없는데 도대체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곡의 벽보다 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분탕질이 아니었더라면 가능했을 수도 있다는 논리를 편다. 유승민 일파의 분탕질로 인하여 10%대의 지지율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유승민뿐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이 들어도 핑계로 여긴다.

손학규는 자신이 사퇴를 하면 당이 넘어간다고 생각했다. 10%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몰라도 애당초 배수진을 칠 일이 아니었다. 설령 10% 지지를 받아낸다 하더라도 당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비난의 빌미를 하나 더 제공한 셈이다. 그렇다 보니 과거 국민과의 약속까지 소환하고 나선 것이다. 손학규로서는 이것도 치명상이다.

전자에서 언급한 대로 유승민 일파는 자유당과 통합이 없다고 밝혔다. 정치에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고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말, 즉 정치가 생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언제 다시 또 입장이 바뀔지 알 수 없으나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손학규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 되고 만다.

이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대량살상무기를 해제시킨다는 것이었으나 대량살상무기는 없었고 그저 의심뿐이었던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유승민 일파를 제거하는 것은 거의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계 권은희 최고위원까지 퇴출을 시켰으니...

하지만 손학규에게는 남는 것이 없다.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는 사수했으나 (당의 골격) 국민의 환심은 사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장은 잡았으나 민심은 잡지 못할 것이다. 특별한 상황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중간층이 넓어져 밥이 많아졌다고는 하더라도 그 많은 밥을 담아낼 그릇이 못 되는 형편이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화가가 아닌 안과의사가 되어야 한다.

화가는 자기가 본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만 안과의사는 사람으로 하여 스스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 준다.

손학규를 망쳐놓은 것은 유승민 일파의 활약(?)도 있지만 화가이고 싶었던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심춘보 선임기자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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