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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분노했는가?
  • 심춘보 대표/발행인
  • 승인 2019.11.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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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식음을 전폐하고 TV에 정신이 빨려들어갈 정도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김일 선수가 등장하는 프로레슬링이 단연 으뜸이었다. 경기 중계가 있는 날이면 할 일이 별로 없는 나이였음에도 만사를 제쳐놓고 TV앞에 앉았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그랬다. 시청률이 80% 이상이었으니...

프로레슬링 경기는 권선징악의 테마가 있었다.

반칙으로 상대를 가격하면 관람하는 모든 이들은 반칙 선수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접이식 의자로 가격하고 신발 속에 감추어둔 병따개로 이마를 찍어 유혈이 낭자한 모습을 보면 분개했다.

곤죽이 되도록 맞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김일 선수가 찢어져 피가 나는 이마를 수건으로 둘러매고 박치기로 상대를 제압할 때는 박수와 함께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의 박치기 장면은 멋있기까지 했다.

 

당수로 상대의 가슴을 타격하는 천규덕(탤런트 천호진 부친)의 공격은 시원했다. 얼마나 타격이 심했는지 알 수 없으나 맞은 선수는 ‘철퍼덕’ 소리와 함께 오만 인상과 괴성을 지르고 쓰러진다. 빠른 몸놀림으로 현란한 경기를 펼친 드롭킥의 명수 장영철 선수.

결국 반칙을 일삼은 선수는 항상 졌다. 선이 악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각본에 의한 공연예술이었다. 비약하자면 쇼였다.(가끔은 각본 없이 싸운 적도 있다. 이런 경기를‘시멘트 매치’라고 한다.) 악인은 역할 분담이었다.

병따개로 이마를 찢은 것이 아니라 시늉만 했다.(피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짜인 각본에 따른 쇼였다는 고백으로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미국은 쇼를 즐기고 있지만...)

하지만 쇼에도 규칙은 있었다. 그 규칙은 심판에 의해 통제받았다.. 상대의 반칙을 못 본 척하는 것도 경기 중 하나였지만 정해진 룰에 따라 경기를 한다.

비록 쇼였다고는 하지만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준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일 선수 이후 우리나라에서 프로레슬링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전 작고한 이왕표 선수가 명맥을 유지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그 자리를 세계적 추세인 이종격투기가 차지했다.

프로레슬링이 어려웠던 시절 우리에게 통쾌한 즐거움을 준 것은 사실이었으나 쇼였다는 사실에 외면받았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기만에 실망했음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으나 프로레슬링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출범으로 인기가 시들해진 측면도 있고 선수 간 불화가 침체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으나 실감 나지 않는 경기에 싫증을 느낀 원인이 쇠락의 결정적 이유라는 단견이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쉽지 않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위장된 한 가족의 허세의 삶에 분노하고 있다. 삶의 궤적을 추적해 볼수록 심판자인 국민의 눈과 법을 교묘하리만치 휘젓고 다녔음이 드러나고 있다. 완벽한 위장술에 모두가 속았다고 분노하고 있다. 김일 선수나 천규덕 선수의 현란한 기술은 그의 언변이 대신했다. 그 언변은 바른 양심의 전부인 줄 알았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의 가족에게 규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검찰이 이 잡 듯 뒤져 찾아낸 결과물을 볼 때 그의 가족은 김일도 천규덕,장영철도 아닌 허리춤에 병따개를 찬 ‘보보브라질’이었다. 심판이 한눈파는 사이 저지른 반칙이 아니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워낙 교묘했다. 완벽한 위선에 놀아난 꼴이다.

본래의 기능과 달리 반칙용으로 사용했던 병따개는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이 대신했다. 그 스마트폰에 맞아 피 흘리는 악인(?)들을 보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무관의 제왕과도 같았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어려웠다. 현학적 기교가 철철 넘쳐난다. 차라리 ‘칸트’나 ‘소크라테스’의 정의를 연구하는 편이 나을 지경이다. 우리 같은 무지몽매한 대중은 범접하기 어려운 정의의 소유자다.  

아무리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돈을 너무 밝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직도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검찰에 의한 희생양인 것처럼 대중의 동정을 끌어내려 한다.

구차한 변명을 하기 싫다 함이 자신 특유의 문법인지 몰라도 진솔한 반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음모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한다.

검찰 출석에 앞서 기억나지 않는 일로 곤욕을 치를 것이라고 사전에 방어막을 쳤다. 바다에 빠졌어도 비를 맞고 싶지 않은 인간 본성이 드러나고 있다. 어제 뿐 아니라 향후 검찰 수사에서 어떤 진술을 할 것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아직 예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그는 회복 불능 상태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설령 4~5%의 지지율(대선주자)을 기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악인에게도 팬은 따라다닌다.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고 다니는 허 모 씨에게도 뒤를 따르는 무리는 많다.

침대 밑 먼지까지 털어내는 것은 위선에 분노한 국민을 대신하는 것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챙긴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국민이 나섰고 검찰은 그 국민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

지나치다는 비판이 있다. 지나친 게 아니라 정상적인 행위다. 과거가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비록 쇼였지만 우리는 김일 선수가 이기길 바랐지 보보 브라질이 이기길 바라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60,70년대를 구가했던 레슬링처럼 한때 그에게 환호를 보냈고 통쾌해 했다.

그러나 ‘레슬링은 쇼다’라는 고백으로 프로레슬링이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그 인생이 위선이었음이 드러나 그를 비롯한 그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아니 헤어날 수 없는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프로레슬링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힘들 듯 그 역시 과거의 조국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틀렸다. 설사 무죄를 받더라도...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없다는 말처럼 그토록 양심과 도리를 외쳤던 그에게 그것이 없다.

순진한 외양이 기만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그래서 분노한다. 우리를 아프게 했다.  '척'이 진실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를 링 위에 올린 프로모션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심춘보 대표/발행인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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