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2.7 토 15:24
상단여백
HOME 사회 건강
알츠하이머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 권영심 작가
  • 승인 2019.11.15 20:25
  • 댓글 0

여배우 윤정희 씨는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영화를 이끈 주역으로 남정임 문희와 더불어 트로이카로 그 이름이 유명하다.
데뷔 오십 년이 넘은 여배우는 흔치 않은데 단아하고 정려한 미모와 함께 윤정희 씨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의 가정생활이 아름답게 돋보여 더욱 멋지다.
그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에 잡혀 있단다.

▲윤정희. 백건우 부부

십 년 전 그녀는 65세의 나이에 그 이의 본명으로 출연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연기를 했다.
그녀의 병이 시작된 것이 십 년 전이라고 하니 기막힌 노릇이다.
배우라는 직업만이 가질 수 있는 우연이었을까...
울 엄마의 젊었을 때 별명이 영도 윤정희였다.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엄마는 예뻤고 자신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 윤정희를 참 좋아했는데 별다른 감정 표현이 없는 엄마가 영화를 보고 온 뒤의 묘사는 놀라운 면이 있었다.

나는 윤정희를 비롯해서 배우나 가수라든지 특정인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예전의 한국 영화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정희는 내 삶의 여러 부분에  인화되듯이 선명하게 찍힌 모습들이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의 로맨스와 파리의 사랑, 북한으로의 납치 미수 사건 등등...
아름답고도 격렬한 삶을 살아가는 한 시대의 여성으로 그 마지막도 눈부신 오로라가 잦아들듯
그렇게 될 줄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명예도 여배우의 아름다움도 알츠하이머는 외면하고 그 차거운 냉혹한 손을 머리에 얹어 버린다.
치매의 75%가 알츠하이머 치매인데 뇌손상 치매라고 할 수 있다.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뇌가 손상되어 기억을 잃어가며 결국 몸의 모든 기능까지도 잃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를 했는데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여러 유형을 많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참 싫고 두렵고 화나고 슬픈 순간들이 많았다.
뼈가 드러나도록 몸은 말랐는데 먹을 것에 집착하는 그 무서운 갈망과 갈무리되지 않고 저지르는 그 더러움들은 봉변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인간이었다.
모든 가식과 모든 체면과 모든 굴레를 벗어버린 인간의 원형은 그렇게 서러운 동물이었다.
지치지도 쉬지도 않고 반복 되는 행위들은 보살피는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모질게 만든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체면과 존엄을 잃었을 때 그것을 마주 대하는 또 다른 인간은 그것을 용납하기 힘들다.
마지막 보루인 가족마저도 결국은 포기하고 마는데 예전엔 보살필 수 있는 가족의 인원들이 많았다.
삼 대가 함께 사는 가정이 일반적이었기에 누구의 손이라도 보살핌이 돌아갔으나 지금은 불가능하다.
윤정희 씨도 딸과 남편이 보살핀다고 한다.
밥을 먹고 치웠는데도 또 찾고 딸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지경까지 왔기에 세상에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윤정희 씨의 시선이 마음을 서럽게 한다.
말라버려 바스러지는 낙엽처럼 이제 모든 기억이 말라 버리면 그녀는 우리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그 기억 속에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적막한 기억이란 상상만 해도 무섭다.
치매란 그 무서운 적막강산에 인간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버려놓는 병이다.
신은 잔혹한 것일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축복이고 무엇이 징벌인지 그 누가 구분할 수 있으랴?
다만 받아들이는 인간 스스로 결국 알게 되지 않을까?
이제 윤정희 씨는 가족들의 사랑과 보호가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녀가 떠나는 날까지 가족들은 날마다 사랑이 더 깊어질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그러니 사람들이여!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라.
내일 기억한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으랴?
동시대의 아름다운 배우 윤정희 씨.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권영심 작가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