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2.7 토 15:24
상단여백
HOME 문화 포토&에세이
아버지의 딸 (1)
  • 권영심 작가
  • 승인 2019.11.22 18:57
  • 댓글 0

그 때가 몇 학년 때였던가...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후문으로 나오면 개구진 아이들이 장난하기 좋을 정도의 비탈이 져서 하교하는 남자 아이들은 반드시라고 할만큼 큰길까지 뛰곤 했다.
그렇게 뛰다가 굴러서 사거리의 찻길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어 엄마는 남동생에게 뛰지 말 것을 주문외듯이 당부하곤 했다.

나와는 일 년 차이라 하교 시간이 같았는데 엄마는 내게도 남동생을 데리고 다닐 것을 당부했다
남동생은 또래 보다 작고 허약해서 엄마의 큰 근심꺼리였다.
어쩌다 만나 같이 가게 되면 남동생은 내게 업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매섭게 뿌리치고 오던가 말던가 먼저 가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로 가슴이 쪼개지는 것 같다.
팔다리가 앙상하게 야위어 피부까지 검은 남동생과 나는 곧잘 비교가 되어 함께 있는 것을 싫어했었다.
"야 ! 가시나야 ! 업어도! "
한 번도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가시나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고 밤이면 경기를 일으켜 난리가 나면서도 끝없이 장난치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 날도 남동생과 같이 하교하게 되었는데 남동생은 나를 볼 것도 없이 동무들과 장난치며 놀기에 바빴다.
특별한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르르 몰려 소리치고 뛰면서 가는 남자 아이들을 피해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어쩌자고 어떤 기억은 희미해지기는 커녕 시간이 흐르면서 더 선명해지는 것인지...

길 아래가 소란스러워지면서 비명 소리들이 들린 것은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얼마 후였다.
학교 건너편엔 길을 따라 상가가 길게 이어졌는데 철물점 앞에 사람들이 모여 들어 난리였다.
나는 그냥 가려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마리야! 니 동생 죽었데이 ! "

그 순간 나는 영문을 몰라 소리소리 지르는 동네 친구를 그냥 쳐다보았다.
잠시후 내가 본 것은 믿을수 없는 광경이었다.
남동생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데 피가 온통 얼굴을 적시고 얼굴에서 계속 피가 나오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지르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이었고 그 시간에 남동생은 수술대 위에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그저 멍하기만 해서 깨어나서도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 손이 아버지의 손이라는 것을 나는 알수 있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기억나면서 나는 소리쳤다.
"진철이... 진철이..."
"아가 . "
아가라고 부르며 아버지는 나를 온 몸으로 꼭 껴안아 주었다.
부들부들 떠는 딸의 몸을 꼭 껴안고 아버지는 오래도록 가만히 등을 두드리며 낮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얼마나 놀랬간?"
"괜찮아야  지금 수술하고 있지 않갔니?"
"쇠꼬챙가 목을 찔렀는데 다행히 얼굴 쪽으로 빠져 목숨엔 아무 일이 없다 캐서."

아버지의 말대로 남동생은 철물점 앞 길에 쌓아두었던 골재와 철근들이 무너지면서 다쳤는데 그 중의 쇠꼬챙이 하나가 동생의 목을 찌르고 얼굴을 통해 밖으로 튀어 나오는 대형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정말 끔찍한 사고였고 남동생은 죽었을 수도 있었다.
아이들끼리 달리면서 장난을 치다 남동생이 굴렀고 하필이면 높게 쌓아 놓은 골재 더미를 건드려 일어난 사고였다.

남동생은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수술이 끝났고 별다른 부작용이 없이 완쾌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남동생은 앉아서 바나나를 먹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의 손에 바나나를 한 개 더 들려주면서 두 번 다시는 후문으로 다니지 말 것을  윽박지르듯이 말했고 남동생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는 말이 "내가 누부야보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안 간다고 했어. 업어 달라고 했는데 안 업어줘서 그래서..."

남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헐크로 변했다.
비호 처럼 달려들어 내 머리채를 쥐고 악을 쓰면서 마구 때리는데 병실의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나도 수술대에 올랐을 것이다.
부러진 안경을 수습도 못하고 병원을 뛰쳐 나와 택시를 타고 시장 입구에 내릴 때 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차에서 내린 내 모습에 동네 사람들이 놀랐고 나는 가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아버지가 뛰어 와서 나를 안으려고 했으나 나는 뿌리치면서"엄마가 나를 이렇게 때렸어!"
"진철이가 거짓말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를 때렸어"

나는 아버지가 당장 엄마를 불러 혼내기를 바라면서 고자질했으나 아버지는 말없이 몸부림치는 딸을 안아 가게로 데려 갔다.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저 산발을 한 머리를 다듬어 주고 코피를 닦아 주며 손톱이 할퀸 자국에 빨간 아까징끼를 발라 주는 아버지가 나는 너무나 이상했다.

2부에서 계속


권영심 작가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