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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인가, 백기인가?
  • 심춘보 논설위원
  • 승인 2019.11.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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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2019년 8월23일 종료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하였으며 일본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 한일 간 수출 관리 대화가 정상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대 품목 수출규제에 대해 WTO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

▲사진:JTBC 화면 갈무리

11월22일 오후6시 김유근 NSC사무처장의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발표는 풍부한 이해력이 동원되어야 해독이 가능할 지경이었다. 대국민 메시지임에도 빨리 알아들을 수 없는 방백에 가까운 발표였다. 바꿔 말하면 험준한 산령을 넘어가는 것만큼 힘든 결정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결정이 시원스럽지 못했다는 얘기다.

청와대 발표에 대해 정치권의 대체적 환영 분위기와는 달리 네티즌들은 실망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정의당의 논평과 같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고 일본과 협상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일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는 신의 한수라고 상찬하는 지지자들과 울분을 토로하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조건부이고, 일본이 이해를 했다고 하지만 일본의 태도는 발표와는 사뭇 다르다. 지소미아는 별개의 문제, 검토,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일본의 태도를 보면 청와대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반응이다. 합의되지 않은 일방적 조건은 아닌지...

언제든지 정지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국민의 정치권 조망 능력은 남산 꼭대기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밝다. 정부의 조건부 연장은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이 개입할 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재가 아니라 압박이었다. 이번 조건부 종료 유예 결정이 방위비 협상과정에서 정상참작 (?)요인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정지할 수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은 앞으로도 중재가 아니라 압박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가 미국의 압박을 견딜만한 견결한 배짱이 있는가의 문제다. 멋쩍어 하는 소리라고 들리는 이유다. 버려진 카드다.

집권여당은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했었다. 60%가까운 국민이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보냈던 국민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사안별 지지를 보냈던 국민은 지지를 철회했다.

일본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백기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안보를 흥정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나라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소미아 폐기 결정에 일본이 경기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예견된 결정이었다면 애당초 칼을 뺄 일이 아니었다. 폐기결정이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는 비판 역시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재 확인시켜준 꼴이다.

국익을 고려한 고뇌의 결단이라고는 하지만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국익을 우선했다면 애초에 분노를 삭였어야 했다. 결정의 배경은 편승이었다. 국민의 분노에 말이다.

이번 유예결정으로 우리는 ‘을’이 되었다. 일본은 느긋해졌다.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한다. WTO 분쟁절차 중지는 예상도 못한 성과라고 놀라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카드를 꺼내지도 않고 지소미아를 원상 회복시켰다고 으스대고 있다.

그런 여론으로 볼 때 일본은 ‘승리했을 때 투구를 졸라매라“는 풍신수길의 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을’인 이유다.

일본이 전향적 자세로 모든 사안을 원점으로 돌려놓는다면 이번 유예결정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녹록지 않다. 치킨게임과도 같은 근본적 문제인 징용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태도도 문제다. 줏대 없는 정권이라고 특유의 독설을 퍼부을 것이고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코리아패싱’이 재현될 것이다.

자신들의 요구대로 유예결정을 내렸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보수야당과 언론의 공격도 이어질 것이다. 그들은 무능이라는 프레임으로 끊임없이 정부를 공격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괜한 짓을 해서 속만 보인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비판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백기이건 국익을 고려한 결정이건 간에 한일 외교가 정상적 흐름을 탈 수 있도록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

감정이 이성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감정적으로야 지소미아 폐기가 아닌 일본과 무력 전쟁이라도 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니꼽지만 미국이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말마따나 아직 우리는 미국과 맞짱을 뜰만한 힘이 없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지소미아는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카드다. 대응 카드를 쥐고 있는 일본이기에 비장의 카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창알머리 없는 일부 국민이야 어쩔 수 없지만 불매운동은 더욱 거세져야 하는 이유다.

고대 인도 사상가 카우틸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궁수가 쏜 화살은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죽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가 세운 전략은 뱃속의 아기도 죽일 수 있다.”라고...

정부에 지혜로운 자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초당적 협력 또한 필수다.  ‘공짜로 준 것보다 더 비싼 것은 없다’는 일본의 속담을 상기시켜 줄 만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

대통령 지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다.

 

심춘보 논설위원  a257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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