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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딸(2)
  • 권영심 작가
  • 승인 2019.11.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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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도 나와 엄마의 다툼에 아버지는 내 편이었고 더구나 엄마가 나를 때릴 수는 없었다.
열세 살이나 어린 아내를 참 많이 사랑한 아버지였지만 나의 무적함대였다.
나에 관한 일이면 그 어떤 것도 엄마는 손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분이 나면 나를 때리지는 못하고 꼬집기를 했는데 나는 일부러 시간이 조금 흘러 빨갛게 부풀어 오른 흔적을 아버지께 보여주며 일러바쳤다.

엄마는 여지없이 아버지께 혼이 났고 나는 '메롱'하면서 고소해했다. 엄마와 나의 싸움은 사안이 무엇이든지 항상 엄마의 완패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맞은 것은 처음인데 더구나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동생의 거짓말에 한 마디도 물어보지도 않고 이렇게나 맞았는데 아버지는 모른체하신다.
나는 너무 분하고 서러워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아주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슬픈 얼굴은 낯선 것이었고 왠지 나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
아버지는 내 두 손을 한 손에 잡아 토닥이며 나직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니 오마니는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런기야. 진철이는 이번에 정말 죽었다가 살아난 거래 마찬가진디 니 엄마도 죽었다가 살아났더랬어. 진철이가 잘못됐으믄 니 오마니도 절대 못살아서... 진철이는 니 오마니 아들이거든. "
"엄마가 데려왔어? 아부지 아들 아니야?"
눈을 크게 뜨고 묻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웃으면서 내 손을 꼭 쥐었다.
"아버지 아들이 와 아니 갔네? 하지만 자식이란 말이디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은 부모의 자식이디. 니 오마니는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않네? 진철이가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거나 그런 것은 상관이 없이 니 엄마는 누구라도 시비를 걸어 때리고 싶었던 기야."

"왜 그러고 싶은데? 진철이는 지가 잘못했는데 왜 다른 사람이 맞아야 해?"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이해시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는듯했다.
나는 어렸지만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을 아버지는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다.
"니 오마니는 말이지, 너무 슬프고 힘든데 그것을 누군가에게 터트리고 싶었던 거이디. 너도 그럴 때가 있지 않네? 분풀이를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엄청 화가 나지않네? 그래서 그게 진철이 말을 듣고 터진거야. 오마니를 용서해 주라마. 만약에 네가 그렇게 다쳤으면 이 아바지는 그 철물점을 박살을 내었을기야, 너는 이 아바지의 딸이니끼니."
나는 그만 분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져서 '헤' 웃으며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의 딸.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울 아버지는 나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엄마가 용서가 되었던 것이다.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충분히 느껴졌다.
내가 다쳤으면 그 철물점이 박살이 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으며 엄마는 그런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내가 그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이해했다.
"알간? 니 오마니래 이 아바지를 때려주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끼니 너를 때린거이디. 너는 아바지 딸이니끼니 .니가 아프믄 이 아바지는 백 배나 더 아프니끼니..."

내가 아프면 백 배나 더 아프다던 나의 아버지.
그 뼈아픈 말의 의미를 나는 언제 깨달았을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 인양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일로 녹였는지 이제는 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살아가면서 그나마 망가지지 않고 내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사랑 덕분이다.
마치 평생을 지탱할 힘을 심어줄 것처럼 아버지의 딸로 나를 사랑해준 아버지...
새벽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눈도 뜨지 못하고 나는 아버지를 찾는다
"아부지...아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너무 심해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불을 깨물며 나는 어린 가시나가 되어 그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난 지 삼십여 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어리디 어린 아버지의 딸이다.
내 머리와 등을 쓰다듬던 그 큰 손의 온기를 기억하는 한.


권영심 작가  webmaster@dasan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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