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22 수 17:32
상단여백
HOME 문화 역사
지독한 사랑
  • 조원균 사회운동가
  • 승인 2019.12.29 12:04
  • 댓글 0

일제강점기에 시인 백석은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외모로 당시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그가 길을 지나가면 여인들이 자지러졌을 정도라 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기생 김영한과의 러브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가슴이 찡하고 아려옵니다.

백석은 함흥 영생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1936년, 회식 자리에 나갔다가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이 잘 생긴 로맨티시스트 시인은 그녀를 옆자리에 앉히고는 손을 잡고,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
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백석은 이백의 시구에 나오는 '자야(子夜)' 라는 애칭을 김영한에게 지어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도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유학파에, 당대 최고의 직장인 함흥 영생여고 영어 선생이었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 둘의 사랑을 갈라놓으려 합니다.

백석은 결혼 첫날밤에 그의 연인 자야(子夜)
에게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을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렇지만 자야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이 혹시 백석의 장래에 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이를 거절합니다.
백석은 자야가 자신을 찾아 바로 만주로 올 것을 확신하며 먼저 만주로 떠납니다.

만주에서 홀로된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그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짓습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이라고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맙니다.
해방이 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 후 3.8선이 그어지고 6.25가 터지면서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백석은 평생 자야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다가 북에서 1996년 사망하게 됩니다.

남한에 혼자 남겨진 자야 (김영한)는 대한민국의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로 성장합니다.

훗날 자야는 당시 시가1,000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를 합니다.
그 대원각이 바로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사찰 '길상사(吉祥寺)'입니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자야는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가 떠나기 전 10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 라는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1000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내가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달라." 고 하였다니
백석의 시처럼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백석에게 돌아가고 싶었나 봅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닐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 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조원균 사회운동가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